일상
아내와 순천만국가정원을 다녀왔다
velca
벨바카
2024년 9월 2일 01시 41분

내 면허증은 15년이란 세월을 장롱에서 보냈다.

이 정도면 면허증이 장롱인지 장롱이 면허증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운 지경 😅

그렇게 내 면허증은 장롱과 하나가 되는 줄 알았는데 다행히 최근에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운전하는 꼴을 보면 다행인게 맞는 지는 모르겠지만 ㅎㅎ

여튼 운전 시작하기 전 까진 나는 가능하면, 진짜 가능하면 늙어 죽을 때 까지 직접 운전은 안 하고 싶었다.

겁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그랬는데 언제나 늦게 배우면 푹 빠지게 되는 법.

옛말에 늦바람이 무섭고,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운전 시작한 지 두 달 정도 돼가는 것 같은데, 처음에는 여전히 운전이 하기 싫었지만 이제는 운전이 하고싶어 안달이 났다.

그래서 오늘도 아내를 꼬셔서 늦은 오후에 순천만국가정원까지 당일치기로 갔다왔다.

가는 동안 안전운행을 약속했지만 .. 안전운행은 나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닌 걸 😇

무사히 다녀오긴 했지만 중간에 심장이 벌렁거릴 만한 일이 몇 차례 있었다 ...

여튼, 순천만국가정원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약 8년 전 연애 초에 방문하고 이번에 두 번째로 함께 방문한 곳이다.

원래는 아침 일찍 가서 맑은 하늘에 파릇파릇한 풀들이 보고 싶었기에 오후에는 안 가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우선, 오후 5시 이후에 방문했더니 야간 입장 할인 덕분에 1인당 만 원씩 하는 입장료를 5천 원만 내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해가 좀 넘어가서 날이 선선해서 좋았고, 마지막으로 노을이 기대 이상으로 너무 이뻤다.

푸른 하늘과 파릇파릇한 풀이 보고싶었는데 불그스름한 노을에 핑크빛 구름과 석양에 물든 풀들이 제법 T의 메마른 감수성을 자극했다.

심지어 푸른 하늘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한 쪽은 푸르고 한 쪽은 붉고 구름은 솜사탕 색이고.

상당히 오랜만에 방문했는데도 엊그제 왔던 것처럼 추억이 새록새록.

물가에서 한쪽 다리 들고 빠지는 척 하면서 사진 찍었던 기억도 나고 ㅎㅎ

저기 수심이 많이 깊은 것 같던데 왜 울타리는 없는지 모르겠다.

배도 8척이나 있고 구명환도 비치되어 있어서 살려낼 수 있다는 자신감인가 😎

카메라를 들이밀면 번지는 햇살이 너무 아름다운데 찍는 사람의 손이 옳지 못하기 때문에 사진을 왜 이렇게 찍었냐는 비난은 하지 말도록 하자 ..

오랜만에 오니까 새로운 부분도 있었다.

바로 저 엉덩이 같이 생긴 언덕.

예전에 이쪽을 안 들렀던 건지, 기억이 안 나는 건지, 새로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엉덩이 두쪽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어서 멀리서부터 놀라며 다가가봤다.

엉덩이가 긴가민가 했는데 허벅지까지 만들어진 걸 보니 엉덩이가 확실한 것 같았다.

심지어 엉덩이 가운데에는 작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는데 .. 요실금인지 변실금인지 모르겠지만 기저귀가 절실해보였다 ..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왜 저런 숭한 걸 만들어놨을까?

그리고 스페이스 브릿지라고 신기한 것도 있었다.

아주 미래적으로 꾸며진 내부에 시원한 에어컨이 빵빵하게 (중요) 틀어진 다리였는데 길진 않아도 시원하게 구경하면서 지나가기 좋았다.

우주인도 방문하는 순천만국가정원이라고 홍보하는 것 같던데, 아마 우주인에 맞는 컨셉으로 스페이스 브릿지를 만든 게 아닐까?

약간 외계 우주선 내부 같은 느낌이 났던 것 같기도 하고.

뭐가 됐든 과거의 모습에 마냥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다리를 다 건너고 나면 이런 멋진 풍경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외엔 볼 게 없어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스카이 큐브라고 4인승 전철 같아 보이는게 있었는데 그건 운행 마감으로 인해 타볼 수가 없었다.

아내가 기대하고 있었는데 다음엔 일찍 와서 꼭 타보는 걸로 해야지.

돌아가는 길에는 찐 추억의 장소들을 둘러봤다.

네덜란드 정원에서 '사랑' 글귀가 적힌 조그만 구조물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고, 커다란 신발을 신은 사진도 찍었었다.

아내가 이번에도 찍으라고 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난 이제 8살이나 더 먹은 으른이니까 😤

그 외에도 이탈리아 정원, 영국 정원, 태국 정원 등을 지나며 지난 추억들을 함께 회상했다.

마지막으로 봉화언덕에 올라가서 노을도 한 번 더 찍음.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아마 앤제리너스인가 카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예전에 저기도 갔었다.

8년 전에는 한 여름 한 낮에 양산도 없이 땡볕 맞아가며 국가정원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중간에 저 카페를 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 그랬으면 둘 중 하나는 지금 없었을 듯 😇

순천만국가정원은 이렇게 끝났지만, 여행에서는 먹는 것도 중요한 법.

시계가 오후 7시를 넘어가고 저녁을 먹어야 했던 우리는 주차장에서 급하게 저녁 메뉴를 찾기 시작했다.

어쩌면 저녁을 못 먹고 가거나, 실망스러운 저녁을 먹을까봐 걱정했는데 아내가 다행히 맛집을 찾아냈다.

바로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나왔다는 백년가게, 거목순대국밥.

둘 다 순대국밥을 시켰는데 국밥집 치고 신기하게 흑미밥을 준다.

순대는 아마 피순대인 것 같은데 여태 먹어 본 순대 중에 제일 부드러웠다.

안에 들어있는 부속 고기들도 살짝 짭쪼름하면서 씹으면 씹을 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게 참 재밌는 맛이었다.

괜히 백종원 3대 천왕에 나온 집이 아니고 괜히 백년 가게가 아니구나 싶은 맛.

오랫동안 살아남은 데에는 역시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렇게 급하게 찾은 것 치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진짜 집으로 복귀했다.

극 P인 내가 주최한 지라 아무것도 안 알아보고 그냥 "순천만국가정원 가자!" 해서 간 여행인데 함께 오래된 추억도 꺼내보고 맛있는 것도 잘 먹고 돌아왔다.

나도 아내도 집돌이 집순이지만 함께 다니면 어딜 가도 재밌는 듯 하다.

다음엔 어디를 가보자고 꼬셔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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